손석희 부인 아내 신현숙 결혼 자녀 아들 남편 집안 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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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부인 아내 신현숙 결혼 자녀 아들 남편 집안 김웅 나이 키 학력 고향 병역 군대 종교 가족관계 데뷔 소속 아나운서 앵커 사장

신현숙 나이 학력 직업 종교 결혼 남편 손석희

출생: 1962년 12월 11일 (57세)

부모: 신경재

배우자: 손석희 (1987년–)

학력: 홍익대학교 서울캠퍼스, 고려대학교

신현숙(1962년 12월 11일 ~ )은 대한민국의 아나운서이다. 종교는 천주교이며, 영세명은 아녜스이다 . 1984년 MBC 아나운서로 입사해 <퀴즈효도관광>, <청소년음악회>, <MBC 대학가요제> 등 굵직한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았다. (손석희 부인 아내 직업)<뽀뽀뽀> 4대 ‘뽀미언니’를 1985년부터 1988년까지 맡아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87년, 동료 아나운서 손석희와 결혼했고, 손석희와의 사이에 아들 둘을 두었다. 1987년 MBC 문화방송에서 퇴사하였다.

손석희 나이 키 학력 고향 병역 군대 종교 가족 관계 데뷔 소속 집안

출생: 1956년 7월 27일 (63세), 서울특별시

키: 178cm

배우자: 신현숙 (1987년–)

본관: 밀양

학력: 국민대학교 (–1982년), 용강초등학교, 휘문고등학교, 미네소타 대학, 서라벌중학교

자녀: 손구용, 손구민

이름

손석희 (孫石熙, Sohn1 Suk-hee)

국적

대한민국

출생

1956년 7월 27일2(63세)

서울특별시 중구

본관

밀양 손씨

신체

177cm

학력

서라벌중학교 (졸업)

휘문고등학교 (졸업)

국민대학교 (국문학 / 학사)

미네소타 대학교 (저널리즘 / 석사)

병역

육군 병장 만기전역(육군군수사령부)

종교

천주교 (세례명: 마르첼리노)

가족

배우자 신현숙, 슬하 2남

직업

언론인

데뷔

1984년 MBC 아나운서

소속

JTBC 대표이사 사장

대한민국의 언론인. 현 JTBC 대표이사 사장.前 MBC 아나운서국 국장 및 성신여자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2013년 5월 13일 JTBC에 입사한 후 JTBC 뉴스룸 메인 앵커 겸 JTBC의 보도, 시사, 교양 담당 사장을 역임했으며, 2018년 11월 20일부로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손석희 어린시절 집안 학창시절 가족관계

1956년, 서울토박이 집안의 2남 1녀 중 둘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위로는 누나가 하나 있으며, 밑으로는 남동생이 하나 있다.그의 아버지는 직업군인으로, 6.25 전쟁 참전으로 인해 무공훈장을 2개나 받은 경력이 있다. 손석희가 6살이 되던 해 아버지는 전역하여 여러 사업을 했으나 여러차례 실패를 거듭했고, 때문에 손석희 가족의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손석희는 취직하기 전까지 30차례나 이사를 다녔고, 집이 없어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한번은 손석희 아버지가 양수기 사업에 뛰어들었는데, 집안에 있던 돈을 다 털고 사들여 놓은 걸 경기도 연천군 전곡 어딘가에 풀어놓았다가 큰물이 져 몽땅 떠내려가 버렸다. 손석희는 “이후 우리 식구들의 사건은 그 사건처럼 극적인 데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 중구 필동의 양철담장집에 세를 들어 살았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상당히 고집이 세고 터프했다고 한다. 국민학교 2학년의 성적표에 ‘이 학생은 고집이 똥고집’ 이라고 적혔다고 한다. 어릴 때는 근처 퇴계로 고아원 아이들과 자주 어울려 놀았는데 딱히 비슷하게 어려운 처지여서가 아닌 누구 하나 특별히 잘 살거나 못 사는 거 없는 처지였다고 한다. 그러다 3학년 때 부임한 담임교사가 도시락 반찬을 싸오지 않고 아이들의 반찬을 빼앗아 먹더니, 한술 더 떠서 아이들의 도시락을 둘러보고 “같이 먹자”며 아이들을 불러냈다. 곧 학급은 선생님 책상에 늘 불려가는 아이들, 가끔 불려 나가는 아이들, 전혀 불려 나가지 못하는 아이들로 나뉘었고, 당연히 손석희는 마지막이었다. 본인은 그때 비로소 가난을 알았다고 한다.

국민학생 시절 심한 도벽이 있었다고 한다. 거의 모든 것이 도벽의 대상이었고, 무엇이든 훔치지 않고는 못 배겼다고 한다. 어머니의 지갑에서 시작해서 이웃집의 물건들을 훔쳤다고 한다. 어머니에게 수 차례 회초리를 맞아도 소용없었고, 어머니가 울면서 타일러도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급기야는 아버지에게 피멍이 들도록 매질을 당했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은 손석희의 자전격 수필집 <풀종다리의 노래>에 나와 있다.

국민학교 고학년 때 성북구로 이사를 갔고, 조용했던 아이들 분위기에 맞춰서 덩달아 조용한 성격이 되었다고 한다. 6학년 때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를 보다가 갑자기 천장에서 작은 흙덩이가 떨어졌다. 대충 지은 집에서 빗물 새는 건 흔한 일이어서 식구 모두 신경 쓰지 않다가, 떨어지는 흙이 점점 많아지자 살림을 마루로 옮기고 옷을 챙겨 급히 집을 나오니 곧 천장이 무너졌다고 한다.

 

국민학교 졸업 후에 서라벌중학교에 입학했다. 손석희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그해(1969년)부터 중학교 입시가 폐지되어 중학교 평준화 1세대가 되었다.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학교에서 전교생이 시험을 쳐서 우열반을 나눴는데, 우반 C반에도 떨어져 열반에 속하게 되어 저녁 보충수업을 받지 않고 노는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 “학교에서도 대충 포기하는 학생이 된 셈이었다”고 손석희 본인 스스로 말한 바 있다. 특히 물상을 못했는데, 관성의 법칙이 도저히 이해가 안갔다고 한다.

중학교 때는 한때 아버지의 사업이 잘 돼서 제법 부유하게 살았다고 한다. 아파트가 드물던 당시 서울에서 제법 좋은 아파트에 살았는데, 당시 그 아파트에는 유명 배우들도 여럿 살았다고 한다. 특히 당시 MBC의 인기 여배우였던 김영애도 같은 아파트에 살아서 종종 마주쳤다고 한다. 또 고교 시절에는 같은 동네에 살던 여배우 고(故) 여운계와 탁구 복식조로 활동했었다고 한다. 중학생 시절 걷는 것을 좋아해 6~7정거장 거리를 꼬박꼬박 걸어다녔다고 한다.

명문 공립 고등학교 입시에 낙방하고9 후기 지망으로 당시 종로구 계동에 있던 휘문고에 들어갔다. 입학식 직후 선배들의 눈에 띄어서 방송반원이 되었다. 이때 처음으로 방송실에 들어갔는데, 방송실 뒤쪽에서 쭈그려 앉아 있던 학생이 송승환이었다고 한다. 열악한 시설이었지만 이 때 경험은 아나운서가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고등학교 시절 식구들한테 “넌 조울증 기가 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휘문고 1학년 때 아버지가 부도를 내 중학교 때 여유로워졌던 집은 다시 어려워졌고, 산비탈에 있는 방 2칸에 부엌 딸린 집에서 살게 되었다. 학교까지 걸어다니며 차비를 모아 고등학교 2학년 때 전축과 레코드 2장을 샀고 결혼하고 새 전축을 살 때까지 15년을 내리 그 전축과 보냈다고 한다.

수험생 시절 특히 수학을 못했는지, 2015년 3월 16일 JTBC 뉴스룸 2부 팩트 체크 시간에, 자신이 사실 수포자였다고 말했다. 그 이전에도 수학을 못했다고 몇 차례 말한 적이 있었다.재수를 해서 1976년 국민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국민대에 합격만 해 놓고 다음해와 다다음해 사수까지 하며 2번 더 입시를 봤으나 모두 실패하여 그냥 국민대를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손석희는 자신의 20대 시절을 허무주의에 빠져 있던 시기로 규정했다. 어려운 가정형편이 주 이유였다고 밝혔다. 손석희는 자신이 20대 시절 빠졌던 허무주의에 대해 나이답지 않았다고 스스로 자평했다. 손석희는 노조 활동을 하게 된 이유를 자신을 지배하고 있던 허무주의를 끝장내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손석희 군대 병역

1979년 군대에 입대했다. 군대에서 ‘좀 편해보겠다고’ 타자까지 배워 입대했다고 한다. 입대 후 훈련소에서 본인이 원하던 대로 타자 주특기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타자 주특기 후반기교육을 받던 시절, 여군 피우진14과 약간의 인연이 있다. 손석희가 타자 주특기 교육을 받던 훈련소는 여군 부사관후보생들을 훈련하는 곳이었는데, 이 훈련부대 중대장 중 한 명이 피우진이었다고 한다. 피우진 본인도 군 시절 이야기를 쓴 저서인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에서, 훈련병 시절의 손석희에 대해 짧게 회고하였다.후반기교육 후 부산에 있던15 육군군수사령부 본부근무대 행정병으로 자대배치되었다.

군 복무 중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고 한다. 2015년 3월 12일 서강대학교 개강 미사 특강에서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군 복무 시절 성당에 가면 좀 졸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가보니 미사 시간에 가슴도 치고, 무릎도 꿇고, 계속 서 있고 해서 잘 수가 없었다고 한다.국민대학교 시절에는 디자이너 장광효16와 동문이었는데, 장광효의 말에 따르면 위 아래 항상 검은 옷을 입고 다녀서 별명이 교복이었다고 한다.2015년 국민대학교에서 모교의 명예를 드높인 공로로 ‘자랑스런 국민인상’을 수여했다.

취업준비생 시절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야구연습장을 많이 다녔고, 오락실에서 갤러그 150만점까지 기록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호황기에 진입하고 있던 당시에는 그리고 대학생의 수가 적었던 당시에는 대학교 4학년 때 입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취준생이라는 개념이 없을 때였다.

손석희 MBC 입사

1984년 MBC에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MBC에 입사하기 전에는 KBS와 조선일보 판매국에서 일한 적이 있었으나 금방 그만뒀다. 조선일보 판매국에서 일하면서 아나운서 시험 준비를 했던 듯하다. 친구들이 방송반 경력도 있고 어울리니 시험 보라고 권유한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어쨌거나 아나운서가 된 이후로 MBC에서 빠른 속도로 아나운서로 입지를 다져서 입사 2년만에 마감뉴스와 아침 뉴스의 진행을 맡을 정도였으나 손석희 본인은 기자를 하고 싶어해 회사에 여러 차례 요청한 끝에 1986년 보도국으로 발령나 기자가 되었다. 기자 시절 서울시청 출입 기자로 활동했다.

그러나 기자 생활 동안 특종을 전혀 잡지 못하여 기자로서 능력을 인정받는 데 실패했고, 결국 1년 만에 아나운서로 재발령되었다고 한다.19 아나운서국으로 복귀하여 1987년 2월에 주말 뉴스데스크 앵커가 되었다.다만 아나운서 방송초기 당시에는 MBC가 명목상으로 공영방송이었지만 실질적으로 관영방송이었던 관계로 당연히 땡전뉴스를 진행했다. 주말 뉴스를 맡았기 때문에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보도를 할 일은 많지 않았지만, 주말에 대통령이 불시에 전방부대를 시찰한 것이나, 국경일 경축사 등의 뉴스를 땡전뉴스 형식으로 보도했다. 평화의 댐 모금방송도 손석희가 MC를 맡아 진행했다. 손석희 본인은 “어용방송을 진행했을 때 자괴감이 들었다”고 하며, 훗날 방송민주화 운동 및 파업에 뛰어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어쨌거나 손석희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6.10 항쟁, 대한항공 858편 폭파사건. 13대 대선, 13대 총선, 1988 서울올림픽, 5공 청문회가 펼쳐지는 격동의 시기 동안 1989년 10월까지 주말 MBC 뉴스데스크와 MBC 뉴스센터 앵커직을 맡는다. 이때가 1988 서울올림픽과도 겹쳤던 시기이기 때문에 20년 뉴스 보기를 통해 당시 올림픽이 진행되었을 때 날짜를 잘 검색해보면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손석희 앵커가 올림픽 특집 뉴스데스크를 진행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여하간 1989년까지 뉴스데스크 앵커직을 맡았다가 1990년에는 저녁 뉴스 앵커를 맡게 되었고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까지는 아침 뉴스 진행을 맡게 된다아나운서 생활 때 만난 6살 연하의 아나운서 신현숙26과 1년 7개월 열애 끝에 1987년에 결혼했다. 참고로 손석희-신현숙 이후 MBC 아나운서국에서는 문지애-전종환 전까지 25년 가까운 세월 동안 사내 커플이 나오지 않았다.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민주화 바람으로 사회 분위기가 급변하던 1988년 8월, MBC 노조가 정부의 방송 관련 법에 맞서 쟁위 발생 신고를 하고 조합원 모두가 가슴에 공정방송 리본을 달기로 하지만, 패용자가 모두 빼앗긴다. 주말 뉴스데스크 진행자였던 그는 갈등하다가 리본을 재킷 겉옷이 아닌 안쪽 와이셔츠 주머니에 달았다. 손석희는 이것을 ‘기억하는 한, 가장 수치스럽고 기회주의적인 행동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자괴심에 시달리다가 다음날인 8월 21일엔 제대로 달고 나갔다.

2013년 5월 9일, 종합편성채널 JTBC로 옮긴다는 보도가 나왔다. JTBC에서 보도 담당사장직을 맡기로 했다고. 5월 10일 시선집중 마지막 방송을 끝으로 하차했다. 마지막 인사말을 전하면서 목소리가 좀 잠기고 억양도 살짝 떨리는 등, 심적으로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실로 MBC내에서 보낸 13년의 기나긴 여정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그의 팬들은 손석희의 말처럼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도 지금처럼 정론의 길을 걷기를 바란다면서 성원을 보냈는데 가는 곳이 다른 곳도 아니라 항상 중립주의였던 그가 종편의 간부로 간다는 게 꺼림직하단 의견도 있었고 손석희의 매형이 JTBC의 대 PD인 주철환인지라 매형의 영향력으로 낙하산 인사로 들어간게 아닌가하는 기사도 나왔었다.

공식적으로 밝혀진 이후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선 중앙일보와는 논조가 다를 것이라고 말했으며 한국일보와의 인터뷰를 봐도 원래 성향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는 의사표명을 드러내는데, JTBC 자체도 원래 삼성만 빼면 은근히 정치적 중립에 가까웠던 만큼 손석희 또한 삼성을 비판하는건 힘들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있었으나 들어가고 얼마 되지도 않아 대놓고 비판했다.

이 때 첫 출근에 관한 웃긴 일화가 있는데, JTBC에서 지정한 손석희의 출근시간은 10시였던 만큼 기자들도 10시에 사진을 찍을수 있도록 진을 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손석희는 이전 MBC시절처럼 이미 1시간이나 전인 9시에 출근한 뒤였기 때문에 뒤늦게 다시 내려와서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손석희의 JTBC행 이후로 부터 2018년 말, JTBC라는 방송사의 대표이사로 올라서기 까지의 직책은 보도담당 사장이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초기에는 인사권은 없었고 다만 인사 담당자에게 의견을 내는 수준이었다 한다. 이따금씩 뉴스룸 대신 진행되는 특집토론에서 보여지는 모습으로는 보도 부문의 편성에 대해서도 별도의 권한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본인이 뉴스를 직접 진행할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다. 2013년 9월 16일부터 ‘JTBC 뉴스 9’ 의 단독 진행을 맡게 됐다는 뉴스가 떴다. 2013년 9월 16일부터 JTBC 뉴스 9의 단독 앵커를 맡는다. 이 건들에 관련해서 오마이뉴스 인터뷰가 가장 정확하다.

2018년 11월 20일부로 JTBC 보도담당 사장에서 공동 대표이사로 승진 임명되었다. 이와 더불어 손 사장의 종전 직인 ‘보도담당 사장’직은 폐지 되었다.

2019년 12월 23일, 장장 6년 4개월 여의 메인앵커 직을 2020년 1월 6일 부로 하차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후임은 서복현 JTBC 정치팀 기자로 정해졌고, 대표이사 직함은 그대로 유지된다고 전했다.

손석희 김웅

손석희 JTBC 대표이사 사장의 차량 사고 등을 기사화하겠다며 채용과 금품을 요구한 혐의로 기소된 프리랜서 기자 김웅씨(50)가 1심에서 법정구속됐다.서울서부지법 형사4단독 박용근 판사는 8일 공갈미수 혐의를 받는 김씨의 선고공판에서 징역 6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김씨는 2018년 8월부터 2019년 1월까지 손 사장이 낸 접촉사고와 폭행 사건을 보도하지 않는 조건으로 JTBC 채용과 2억4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요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5월 결심공판에서 “혐의를 부인하면서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며 김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했다.

박 판사는 “김씨는 손 사장에게 채용이 어렵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채용 절차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주차장 사건의 해명을 요구하면서 언론 보도를 암시하는 말을 했다”며 “공갈의 고의가 충분히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어 “풍문으로 알게 된 주차장 사건과 경미한 폭행으로 피해자를 수개월간 협박해 JTBC 취업이라는 재산상 이익과 2억4000만원의 재물을 요구했다”며 “범행의 정황과 수법 등에 비춰 죄질이 가볍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협박이 단기간에 그치지 않아 손 사장의 정신적 고통이 컸다”며 “김씨가 범행을 반성하지 않고 재판 받는 도중에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지속적으로 주차장 동승자 문제 등 사실로 확인되지 않는 내용을 언급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선고 직후 판결에 불복,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번 사건은 김씨가 지난해 1월10일 서울 마포구의 한 주점에서 손 사장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시작됐다. 손 사장은 김씨가 자신을 협박했다며 공갈미수와 협박 등 혐의로 김씨를 맞고소했다. 앞서 손 사장은 올 4월 김씨를 폭행한 혐의로 벌금 300만원의 약식명령을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