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 나이 결혼 노래 전부인 아내 이혼 사유 직업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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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 나이 결혼 노래 전부인 아내 이혼 사유 직업 가수 키 학력 고향 몸무게 혈액형 데뷔 가족 종교 소속사

김경호 나이 키 학력 고향 몸무게 혈액형 데뷔 가족 종교 소속사

출생: 1971년 6월 7일 (49세), 목포시

키: 178cm

소속사: 프로덕션 이황

앨범: Unlimited, The Life, Infinity, Kim:kyungho 1997

방송: 나는 가수다

출생

1971년 6월 7일 (49세)

전라남도 목포시

본관

김해 김씨

신체

178cm, 59kg, O형

학력

목포 문태중학교

순천 이수중학교

순천 효천고등학교

서울예술신학대학교 연극영화과 학사

서울예술신학대학교 실용음악예술학부 교수

데뷔

1994년 1집 앨범 ‘KIM KYUNG HO’

가족

부모님, 형 김기호 (1969년생)

종교

개신교

소속사

프로덕션 이황

특유의 두꺼운 미성과 날카로운 고음, 폭발적인 샤우팅, 엄청난 성량, 그리고 무지막지한 무대 매너와 퍼포먼스를 기반으로 한 압도적인 라이브로 유명하며 해외에서까지 극찬을 받기도 했던 신급神級의 가창력을 지닌 대한민국의 전설적인 록보컬리스트이다. 또 록커로써는 정말 드물게 공중파 음악 프로그램 1위 곡을 보유 하고 있을 정도로 대중적인 히트곡들도 꽤 있는 대중 가수다.별명으론 국민 언니, 경호 언니 누나, 로큰롤 언니, 상남자, 주부 락커, 깜찍이 락커, 쁘띠 락커, 예쁜 치타, 노친네, 헤어 마스터 등이 있다.

김경호 어린시절 학창시절

어릴 때부터 아나운서였던 아버지의 잦은 전근으로 인해 이사를 많이 다녀서 학교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왜소한 몸집과 하얗던 얼굴, 내성적인 성격 등으로 인해 학교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많이 당해왔다고 한다. 학교폭력으로부터 지켜주던 친형을 존경해 오다가 축제에서 기타 치고 노래하던 형의 모습을 보고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음악인의 길을 걷게 된다. 처음부터 락 음악만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 이선희, 조용필, 해바라기 등의 노래도 좋아했는데 변성기가 없음으로 인해 여성 가수의 노래를 즐겨 부르기도 했으며, 한순간에 휘어잡는 밴드의 무대 모습을 보고 락 음악을 선택하게 되었다 한다.

고등학교 재학 중인 1989년 KBS 제2회 청소년 창작가요제에서 <꿈 그리고 사랑>으로 동상, 1991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긴 이별>이라는 곡으로 동상을 차지했다. 그 때만 해도 감성적인 발라드였을 뿐 무대 위에서 머리를 흔들고 샤우팅을 구사 하는 지금의 김경호 느낌과는 매우 달랐다. 후에 <긴 이별>은 1집 앨범에 편곡 되어 실렸다.이후 히든 싱어 1에서 주영훈이 밝힌 바로는 “여자 보다 더 높은 음을 구사하는 가수가 나왔다고 음악계에서 쇼킹해했다.”고 했다.

 

김경호 노래 대표곡 히트곡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금지된 사랑

시간의 숲

10집 공존 Part.2 Episode 1 시간의 숲 · 2017년

비정

Shout

Kyung-Ho Kim 03 · 1998년

와인

Kim kyungho-5th · 2000년

대답 없는 너

사랑과 우정 사이

나는 가수다 경연 10-1. 듀엣곡 부르기 · 2011년

나의 사랑 천상에서도

00:00:1998 KYUNG-HO KIM · 1998년

뛰어

Heartless

KYUNG-HO KIM IV · 1999년

영원히 내게

나의사랑 천상에서도

아름답게 사랑하는 날까지

1999년

I Love You

…Love U · 2000년

암연

나는 가수다 경연 10-2. 호주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 2011년

사랑했지만

The Life · 2001년

Uncompleted Love

Kyung-Ho Kim 03 · 1998년

초우

이유 같지 않은 이유

나는 가수다 경연 11-1 · 2011년

The Aria of Sad Soul

Kim:kyungho 1997 · 1997년

Dracula

Kim:kyungho 1997 · 1997년

아모르 파티

A Castle of Eternity

Kyung-Ho Kim 03 · 1998년

탈출

Kim kyungho-5th · 2000년

남자라는 건

KIM KYUNG HO · 1994년

못찾겠다 꾀꼬리

나는 가수다 경연 9-2 조용필 스페셜 · 2011년

Our Son

Kim:kyungho 1997 · 1997년

The Last Pray

Kim:kyungho 1997 · 1997년

이수

00:00:1998 KYUNG-HO KIM · 1998년

Now

Open Your Eyes · 2003년

너를 기다려

Kim:kyungho 1997 · 1997년

세션을 잘 해주지 않기로 유명한 이현석이 김경호 만큼은 자신이 책임 진다는 말을 할 정도로 전폭적으로 지원한 첫 시작 <마지막 기도>.12 그 후 1994년 1집 <마지막 기도>로 정말 충격적인 데뷔를 했다. 비록 본인이 직접 생각하기도 싫은, 완전 망했다고 회고할 정도로 상업적으로는 실패했지만, 무지막지한 고음과 파괴력 있는 목소리가 매니아들의 기억에 확실히 남게 된 것.여러가지 악재가 겹쳐서 그의 1집은 처참히 망했지만 이는 대박을 향한 전조로, 김경호는 2집을 발매하기 전까지 머리를 기르고, 의상과 액션 등을 다듬어 2년뒤 2집을 발표했고 그렇게 나온 타이틀곡이 이경섭이 작곡하고 강은경이 작사한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아는 김경호의 이미지는 이 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데뷔하고 처음 나온 KBS <이소라의 프로포즈>에서 이소라는 “우리나라에도 이제 저런 록 보컬이 TV에 나왔구나…”하며 감탄했다고 한다. 비록 1집이 많은 판매량을 기록하진 못했지만 이승철이나 N.EX.T, 기타리스트 이현석 등의 콘서트 게스트 등으로 활동하며 조금씩 라이브 경험을 쌓아나갔다. 그리고 1997년 발매한 2집 타이틀곡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이라는 곡은 장르의 한계를 가지고도 88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면서 <SBS TV 가요 20>에서는 1주,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에서는 2주간 1위를 차지했고 당시 락커들에게는 금기(?)의 구역이었던 <KBS 가요톱10>에서는 DJ DOC, H.O.T., 임창정과 함께 1위 후보까지 오르는 등 선전하면서 히트를 쳤다. 특히 골든컵을 차지하게 되는 임창정의 <결혼해 줘>와 대결했을 때는 한 표(1892:1891) 차이의 접전을 펼쳤다.

가창력

타고 났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압도적인 음역대와 성량을 바탕으로 폭발적인 샤우팅과 단단한 중저음역까지 보여 주는 국내 가요계의 레전드로 손 꼽힌다. 헤드보이스에 체스트보이스적 음역을 끌어 올린 발성법이 두터운 미성에 결합 되어 만들어진 음색에 강한 비브라토와 스크래치 같은 기교적 요소가 합쳐져 8비트 기반의 록발라드에도 강점을 보인다. 다만 착각 하지 말아야 할 점은, 김경호는 록에 더더욱 부합 하는 보컬이라는 점. 최근에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감정이 점점더 깊어지고 저음도 더욱 잘 낼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김경호의 가창력을 논 할 때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바로 샤우팅이다. 이 메탈릭한 샤우팅은 세계에서도 손 꼽힐 만 하다. 무대를 빈 틈 없이 꽉 채우는 강렬한 사운드와 무시무시한 음역, 이제는 전설이 되어 버린 김경호의 스크래치 창법이 결합 된 샤우팅은 그의 음악적 감각에 의해 적재적소에 활용 되어 뛰어 난 평가를 받는다. 당시의 김경호를 보지 못 해 이 샤우팅의 비중이 잘 실감 되지 않는 10 ~ 20대 사용자들은 전성기 시절 나얼의 애드립 능력이 그의 보컬에서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 했는지를 생각 해 보면 된다.

또한 전성기, 성대결절의 고난을 지나 현재진형형으로 흉성에서 끌어 올리는, 날카롭기보다 묵직하다라는 표현에 더 걸맞는 샤우팅을 구사 하고 있다. 발성적인 면에서, 전성기 때 샤우팅보다 덜 무리가 간다고 확신 할 수는 없으나, 샤우팅이라는 창법 자체가 무리가 갈 수 밖에 없으므로 이 만큼 회복 한 것도 경이로울 따름이다.

대중들은 김경호를 대한민국 최고의 록 보컬리스트로 꼽는데 이견을 가지지 않는다. 보수적이라는 록씬에서도 ‘김경호 같은 보컬이 한 명만 더 나와줬으면.’ 이라 생각할 정도이며 김경호는 록발라드로 인기몰이를 했지만 정작 자신의 공연에서는 록발라드보다 강렬한 하드록, 메탈 넘버들을 더 많이 불렀다.

여담으로 자신이 직접 곡을 쓰지 않는다고 까는 안티들도 가끔 있는데 김경호의 자작곡이 아예 없는 것이 아니다. 데뷔도 자작곡으로 했으며 음반 프로듀싱에도 참여했다. 애초에 김경호는 록 보컬리스트를 지향한 것이지 작사,작곡, 노래를 전부 하는 싱어송라이터를 지향하지 않았다.

김경호의 엄청난 고음은 중고딩들이 고음병과 발성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 원인이 되었고, 쓰잘데기 없는 발성 지식과 고음 내는 방법 등 속칭 입발성을 널리 퍼뜨리는 데 일조했다.예전만큼 많지는 않지만, 아직도 포스트 김경호를 꿈꾸는 꼬마들이 있는데 MBC 위대한 탄생에서 김태원은 “김경호는 한 사람이다. 그를 아무리 똑같이 따라해본들 김경호에게는 이길 수 없다.”고 언급한바 있는데, 이처럼 김경호의 노래 스타일이나 발성은 굉장히 유니크한 것으로 그렇게 노래를 잘하기는 굉장히 힘들다. 발성적 지식을 모르고 함부로 따라하다간 나쁜 버릇이 들기 딱 좋다. 복면가왕에서 조장혁도 김경호의 창법을 두고 깊은 내공이 있지 않으면 발성하기 쉽지 않은 창법이라 평가한 바 있다.

김경호 결혼 전부인 아내 직업 이혼 사유 이유

2014년 7월, 4년간 만나온 13살 연하 일본인 여자친구와 2014년 안에 결혼 하겠다고 발표 했다.2014년 11월 8일, 교제 중이던 일본인 여자친구와 결혼에 골인 하게 되었다.

하지만 김경호는 결혼 4년여만에 협의 이혼했다.연예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김경호는 지난 6월 일본인 아내 A씨와 모든 법적 절차를 마무리하고 이혼했다.

김경호는 2011년 지인의 소개로 만난 13세 연하인 일본인 A씨와 2014년 11월 결혼했다. 회사원인 전부인은 미모의 재원으로 지난 2011년 지인의 소개로 만나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성격차이, 문화차이 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각자의 길을 걷게 됐다.